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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루팡 시평

열흘의 신호등

부루팡 富樓房 · 연구인 · 2026-08-25

언젠가 아버지가 신문을 내던지며 중얼거린 적이 있다. "이 사람들은 대체 뭘 원하는 거야." 무슨 일인지 몰랐지만 그 어조만큼은 선명히 기억한다. 한참 뒤에야 알았다. 당시 정부가 어떤 부동산 규제를 발표했다가 며칠 만에 보완책을 내놓았고, 그 보완책이 다시 손질될 거라는 풍문이 돌았던 것이다. 아버지는 결국 그해 집을 사지 않았다. 다음 해에도 사지 않았다. 신호등이 녹색인지 적색인지 확신이 서지 않으면 사람들은 일단 멈추기 마련이다.

8월의 부동산 시장이 묘한 기시감을 준다. 정부가 지난 3일 발표한 세제개편안 — 비거주 1주택자에 대한 종합부동산세 기본공제 축소, 장기보유특별공제 적용 제한 — 은 강남권 일부 단지에서 급매물을 쏟아지게 했다. 한 경제지의 집계에 따르면 서초구에서 호가를 낮춘 매물 비중이 85%에 달했다고 한다. 그런데 발표 3주가 채 되지 않아 여당에서 '완화' 논의가 불거지자 분위기가 바뀌었다. 급하게 내놓았던 물건을 거두거나, 다시 호가를 올리는 집주인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시장이 혼란스러운 것인지, 시장을 대하는 정책이 혼란스러운 것인지 분간이 쉽지 않다.

조령모개(朝令暮改)라 하면 너무 익숙한 비유일 터이나, 요즘 벌어지는 장면들은 그 속도가 한층 빠르다. 국토교통부는 고시원 호실에 욕조 설치를 허용하는 개정안을 행정예고했다가 열흘 만에 "재검토하겠다"고 물러섰다. 여론의 비판이 거셌기 때문이다. 1인 가구 증가라는 통계가 있고, 최소한의 위생 환경이라는 명분이 있었지만, 막상 발표해 보니 '탁상행정'이라는 평이 쏟아졌다. 정책을 준비한 관료들로서는 억울할 수도 있겠으나, 중요한 것은 발표와 철회 사이의 시간이 열흘밖에 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 열흘 동안 시장은 무엇을 믿어야 했을까.

이재명 대통령이 25일 국무회의에서 이런 말을 했다. "어떤 기사를 보면 정부 정책이 국회 의견을 받아들여 수정하면 오락가락이라 비난하고, 합의가 잘 안 되면 일방적이라 한다." 그는 "앞으로 가도 비난, 뒤로 가도 비난, 서 있어도 비난"이라고 덧붙이며 "거기에 너무 연연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정치의 언어로는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민주주의란 본래 타협과 수정의 과정이니까. 그러나 부동산 시장의 언어는 다르다. 집을 팔지 말지, 사야 할지 기다릴지 결정해야 하는 사람들에게 정책의 수정 가능성은 '유연함'이 아니라 '불확실성'으로 읽힌다.

경기 남부에서는 삼성전자의 저리 주택대출 소식에 매수 문의가 늘고 있다고 한다. 연 1.5%로 최대 5억 원까지 빌려주겠다는 것이니, 평택·화성·분당 일대에 훈풍이 부는 것은 자연스럽다. 한편에서는 비거주 1주택 세제 강화가 흔들리고, 다른 한편에서는 대기업 복지대출이 시장을 자극한다. 신호가 뒤섞이니 운전자들이 어리둥절한 것이다.

나 역시 칼럼을 쓰면서 종종 곤란에 빠진다. 정부 발표를 근거로 어떤 방향을 논했는데, 일주일 뒤 그 발표가 수정되면 지난 글은 허공을 친 셈이 된다. 독자는 "그래서 어쩌라는 거냐"고 물을 테고, 나는 "지금 시점에서는 이렇습니다"라는 궁색한 답을 내놓을 수밖에 없다. 진퇴양난(進退兩難)이라는 말이 칼럼니스트의 처지에도 맞는지 모르겠다.

인천에서는 노후계획도시 정비 선도지구 5곳이 선정됐다. 1만 6천여 호 규모로, 단일 지자체 기준 역대 최대라고 한다. 1기 신도시 정비가 부산, 대전에 이어 인천까지 확대된 것이다. 정부는 "속도감 있는 정비사업"을 약속했다. 그러나 이 속도감이 어디서 발휘되고 어디서 제동이 걸릴지, 지금으로서는 누구도 장담하기 어렵다. 서울에서는 500가구 이하 정비구역 지정 권한을 구청장에게 넘기자는 논의가 나왔다가 서울시가 "사업 지연을 초래한다"며 반발하고 있다. 종로구 창신동의 한 구역은 18년간 표류 끝에 법정 동의율을 넘겼지만, 구청장이 바뀌자 인허가가 다시 멈췄다고 한다. 권한을 나누면 속도가 붙을까, 아니면 책임만 분산될까. 이 물음에도 신호등은 깜빡일 뿐이다.

대통령은 "정책이란 당연히 정부가 안을 내고 국회가 심의해서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것"이라고 했다. 맞는 말이다. 그 과정에서 변경이 생긴다고 흔들릴 필요는 없다는 것도 원론으로는 옳다. 그러나 시장 참여자들은 원론으로 집을 사지 않는다. 변경이 생길 '가능성'을 할인율에 반영한다. 그래서 정책의 신뢰는 곧 정책의 효력이 되고, 신호등이 자주 바뀌면 신호등 자체를 무시하는 운전자가 늘어난다.

"앞으로 가도 비난, 뒤로 가도 비난." 이 말은 정책 결정자의 고충을 담고 있지만, 동시에 시장이 왜 불안해하는지를 설명해주기도 한다. 어느 쪽이든 비난을 받을 거라면, 사람들은 차라리 기다린다. 그리고 기다리는 사람이 많아지면 시장은 경직된다. 경직된 시장에서 정부는 또 다른 대책을 내놓고, 그 대책이 다시 수정되면서 신뢰는 한 겹 더 닳아간다. 아버지가 신문을 내던지던 그 오후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