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원의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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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어린이정원의 오후 풍경을 상상해본다. 옛 미군 장교 숙소 부지에 꾸려진 이 공원은 지난해 가을 개장 이래 주말이면 가족 단위 나들이객으로 북적인다. 넓은 잔디밭에 돗자리를 펴고 앉은 사람들, 느티나무 그늘 아래서 책을 읽는 청년, 한강 방향으로 자전거를 끌고 가는 커플. 그런데 이 평화로운 풍경 위로 이번 주, 묘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김윤덕 국토교통부 장관이 "용산공원 전체를 훑어서 주택용지를 추가 발굴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어린이정원은 물론, 아직 반환되지 않은 캠프킴 일대까지, 공원으로 예정된 땅 전체를 주택 공급의 후보지로 들여다보겠다는 뜻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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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발은 즉각적이었다. 서울시는 "서울의 마지막 대규모 도심 녹지를 훼손해 주택을 공급하는 데는 매우 신중해야 한다"며 사실상의 반대 입장을 냈다. 용산구청 역시 "용산공원은 국가적 상징 공간"이라고 거들었다. 한 도시계획 전문가는 뉴욕 센트럴파크를 거론하며 "세계 대도시의 정책 방향에 역행한다"고 비판했다. 공원을 단순한 빈 땅이 아니라 미래 세대를 위한 핵심 도시 인프라로 봐야 한다는 논리다. 장관은 "무조건 안 되는 곳을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고 재차 강조했지만, 이 말은 다르게 들리면 "무조건 되는 곳도 없다"는 뜻이 된다. 공급 압박이 그만큼 절박(切迫)하다는 방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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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공급만 늘리면 문제가 풀리는가. 같은 주에 나온 다른 소식이 눈에 걸린다. 정부가 2030년까지 수도권 매입임대주택 14만 채를 착공하겠다고 했는데, 정작 이미 사들인 매입임대주택의 빈집이 전국과 수도권 모두 2021년 이후 최대치라는 것이다. 다세대·다가구 위주의 매입 물량이 수요와 어긋난 탓이라고 한다. 단순히 숫자를 쌓는 것과 사람들이 실제로 들어가 사는 것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강이 있다. 칼럼니스트 노릇도 때로는 그렇다 — 논거를 쌓는 일과 독자의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일이 같지 않듯이. 한편 수도권 아파트 무순위 청약, 이른바 '줍줍' 물량을 LH가 우선 매입해 공공임대로 돌리겠다는 방침도 발표됐다. 소수에게 돌아가던 시세차익을 차단하겠다는 취지지만, 무주택 실수요자 입장에서는 '로또 한 장'의 기회가 사라지는 셈이기도 하다. 공급의 그릇을 어떤 모양으로 빚느냐에 따라 누군가는 밥을 담고 누군가는 손을 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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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공원을 열 것인가, 닫을 것인가 — 이 질문은 결국 도시가 무엇으로 사느냐를 묻는다. 집이 부족해 청년이 떠나는 도시도 위태롭지만, 숨 쉴 녹지가 사라진 도시 역시 오래 버티기 어렵다. 정부는 오는 20일 오세훈 시장을 만나 공급 방안을 협의한다고 했다. 그 자리에서 어떤 합의점이 나올지 알 수 없으나, 적어도 한 가지는 분명하다. 공원의 자리는 지금 비어 있는 것이 아니라, 미래의 누군가가 앉을 자리로 예약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빈 땅에 집을 짓는 것과 예약된 자리를 뺏는 것은 같은 일이 아니다. 이 차이를 어떻게 판단할 것인지, 그것은 결국 정책 입안자가 아니라 이 도시에 사는 당신과 나의 몫이다.